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톤 코빈 (문단 편집) == 여담 == * 아버지를 비롯해 삼촌과 할아버지도 [[목사]]인 목사 집안 출신이며, 본인도 어린시절에는 [[선교사]]가 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 [[뮤직비디오]] 중에는 [[신성모독]] 논란을 부른 밴드 [[디페시 모드]]의 대표곡 가 있다(...) 참고로 늦둥이다. 안톤이 태어났을때 아버지 나이는 38세였다. * 이런 배경 덕분에 종교적 소재를 즐겨 다루는 [[디페시 모드]]와 유독 작업을 많이 했다.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1/jun/01/anton-corbijn-on-40-years-shooting-depeche-mode|링크]] 디페시 모드에겐 5번째 멤버나 마찬가지인 존재라고 불릴 정도. 프로모 사진, 앨범 표지 디자인, 로고, 무대 디자인, 콘서트 VCR 등 밴드와 관련된 시각적 영역 전반을 담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페시 모드 앨범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손글씨는 그가 직접 쓴 것이다. 이 손글씨는 디페시 모드의 [[Violator]] 앨범의 수록곡인 [[https://youtu.be/h1mD-_DKHc0|Clean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하며, 2020년에 공개된 이들의 사진집 본문은 전부 안톤이 직접 쓴 손글씨이다. --다만, 앨범 표지 손글씨와는 달리 [[필기체]]이다 보니 읽는 데 애로사항이 있다.-- * [[U2]]와도 자주 작업을 했는데 이 밴드 역시 종교적 소재를 자주 다루는 밴드이다. 다만 U2의 경우는 보노 본인의 기독교 신앙을 보편적인 메시지로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The Joshua Tree]] 앨범 재킷이 대표작이다. * [[조이 디비전]]의 이안 커티스를 처음 만났을 당시엔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https://www.52-insights.com/anton-corbijn-finding-peace-through-the-lens-photography-interview-music/|링크]] 그가 본 이안 커티스는 매우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 [[디페시 모드]]는 [[1980년]] 데뷔 당시[* 디페시 모드의 정규 앨범은 1981년에 나왔지만, 실제 활동은 1980년부터였다.] [[NME]] 표지 사진을 인연으로 안톤 코빈을 만났다. 2007년 [[인디펜던트]]지 [[https://www.independent.co.uk/news/people/profiles/how-we-met-dave-gahan-anton-corbijn-744842.html|기사]]에 이들이 안톤 코빈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처음 코빈을 만난 장소는 [[함부르크]]의 [[https://en.wikipedia.org/wiki/Fetish_club|페티시 바]]였는데[* 나무위키에 설명된 [[페티시 클럽]]은 일본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일본이 돈을 내고 종업원의 서비스를 받는 유사 성매매 업소 개념이라면, 서구권의 경우는 사전에 놀이의 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를 엄격히 준수한다는 전제 하에 각자 알아서 즐기는 것으로 개념 자체가 많이 다르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는 연인이나 배우자끼리 엽기적이고 독특한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찾는 경우도 있으며, 모르는 사람에게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은 금지하여 성범죄 논란을 사전에 차단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 [[https://www.dazeddigital.com/life-culture/article/39260/1/the-essential-guide-to-your-first-time-at-a-fetish-club|기사]]를 참조할 것. 다만, 기사의 사례는 [[BDSM]]클럽이라, 이벤트성 여장을 한 코빈의 사례와는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것.] 코빈은 [[여장]]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코빈이 성소수자이거나 평소 여장을 즐긴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의 경험 때문인지, [[디페시 모드]]의 공연 VCR에는 트랜스젠더의 일상을 담은 것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6-33mzr9GM|링크]]] 이처럼 첫 만남 장소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여담으로, [[디페시 모드]]의 마틴 고어는 몇 년 후 극보수적인 기독교인 여친과 헤어지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면서 호기심에 여러 클럽을 가 보았는데 그중에는 [[BDSM]] 클럽도 있었으니, 어찌 보면 코빈과의 만남은 운명인 셈.] 코빈은 당시 [[NME]] 표지에 등장한 [[디페시 모드]]를 촬영했는데, 보통 프론트맨이라 불리는 보컬에 포커스를 맞추는 다른 포토그래퍼와는 달리, 나머지 멤버들 쪽에만 쨍하게 촛점을 맞추고 보컬인 Dave Gahan은 흐릿하게 처리했다고 한다(...) Dave Gahan은 이 사진을 찍을 때 직접 염색한 핑크색 셔츠로 한껏 멋을 부렸다. --심지어 저 당시 Dave는 비쥬얼 멤버였다(...) 어째 [[램브란트]] 생전 논란과 비슷하다.-- [[파일:NME depeche mode.jpg]] '''이것이 문제의 표지''' 그리고 이 사진은 전 세계에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2020년 시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홍보하는 사진으로 써 먹히고 있다(...) 원래 사진을 찍은 장소는 이러하다. [[http://media.depechemode.com/micro_sites/remasters/gr/wallpaper/speakandspell_4_1600.jpg|링크]] --목사 아들 아니랄까봐 깨알 같은 십자고상-- * 그런데 안톤 코빈도 당시에는 [[디페시 모드]]의 음악이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들과 일할 기회를 거절했다고 한다. [[디페시 모드]] 문서에도 나오듯이 데뷔 당시엔 빈스 클라크가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라, 음악 색채가 매우 밝았다. * 하지만 빈스 클라크가 탈퇴한 이후부터는 음악적 색채가 매우 달라졌고 1986년 뮤직비디오 요청을 받았을 때는 안톤 코빈도 생각이 달라져 응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안톤 코빈은 [[디페시 모드]]와 점점 더 자주 작업을 하게 된다. * 단지 사진과 뮤직비디오만 찍은 것이 아니라 스타일링에도 영향을 미쳤다. Dave Gahan이 2003년 Q 매거진과 인터뷰를 했을 때 언급된 내용인데, 1985년까지만 해도 눈썹을 다듬고 탈색을 했었으나, 안톤 코빈의 조언에 따라 눈썹 다듬기를 그만 뒀다고 한다. [[디페시 모드]] 문서에 나온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본래 Dave Gahan은 [[두꺼운 눈썹|숯검댕이 눈썹]]이다. * [[디페시 모드]]의 1993-1994년 투어와 1998년 투어, 2001년 Exciter 투어 때는 무대 디자인까지 담당했다.[[http://www.tiptopwebsite.com/websites/index2.php?username=depechemodefile&page=29|링크]] * [[디페시 모드]]와 정말로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1996년]]이었다. 당시, [[R.E.M.]][* R.E.M.도 안톤 코빈이 촬영했던 뮤지션이었다.]의 마이클 스타이프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디페시 모드의 Dave Gahan이 정신적으로 매우 안 좋은 상태임을 알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Dave Gahan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 직전까지 갔다. [br]이후 앨범의 재킷과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안톤 코빈은 Dave Gahan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치플|Dave의 상황을 반영해 Barrel of a Gun 뮤비 콘셉트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Dave Gahan에게 눈 감고 걸어가는 연기를 시키면서 엄청 굴렸다.-- * 안톤 코빈 피셜에 따르면 Dave Gahan은 사진보다는 실물이 잘생겼다고 한다. '''He's so great-looking it's hard to be photographed with him; you look like a loser.''' --대략 번역하자면, 너무 잘생겨서 사진으로 제대로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고, 기자 네가 옆에 가면 넌 오징어 될 거임. 뭐 그런 늬앙스-- 그리고 잠재적인 연기력과 해석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 평균키가 큰 네덜란드인답게 194cm의 장신이다. *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자녀를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Nimi라는 이름의 여자랑 결혼했지만, 사생활을 잘 얘기하지 않아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 패션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는 흑인 여성인데, 종종 부부끼리 럽스타그램을 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와 집콕 생활 중. 귀국 후, 1981년부터 2018년까지 촬영한 [[디페시 모드]] 사진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를 집필했으며, 2020년 10월에 공개됐다. 31.5 x 44 cm, 5.86 kg, 512페이지라는 [[크고 아름다운]] 규격을 자랑한다. [[https://www.taschen.com/pages/en/catalogue/music/all/66929/facts.depeche_mode_by_anton_corbijn.htm#images_gallery-1|링크]] --멤버들의 사인이 있는 한정판을 먼저 풀었는데 현재 품절 상태-- [[분류:1955년 출생]][[분류:네덜란드의 영화 감독]][[분류:뮤직비디오 감독]][[분류:네덜란드의 사진가]][[분류:자위트홀란트주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